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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 누구?1987 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와 1987 실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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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 누구?1987 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와 1987 실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요즘 영화 1987의 흥행열기가 뜨거운데요.

오늘은 1987의 실존인물 중 한 사람인 이근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누구ㅎㅎ인가?

[이근안 나이 프로필]


이근안은 전직 고문기술자이자 목사라고 합니다.

이근안은 1938년 3월생인데요. 이근안 나이는 올해 80살이네요.

이근안은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대한민국 공군에서 복무했다고 하는데요.

970년 7월 대한민국 경찰 순경에 임명되었고,

전두환 정권 붕괴 후, 5공청산, 고문수사 논란이 거세지자 1988년 3월 화성경찰서에서 사직했습니다.

가명은 김철수이고, 별칭은 박중령, 불곰, 반달곰이었다고 하네요.



영화 1987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실화로 만든 영화인데요.

실화인만큼 실존인물도 등장하겠지요.

1987에서 김윤석이 맡은 박처장 역할은 실제 박처원 치안본부 5차장이라고 하는데요.

박처원 사단 중 한 사람이 바로 이근안입니다.


영화 1987 속 등장하는 고문경찰 중 한 사람이 이근안인 것이죠.

또한 영화 1987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실화로 한 영화인데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폭행으로 사망한 사건을 말합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 그리고 현재 생활모습은?

이근안은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는데요.

대공 담당 형사였던 이근안은 군사정권 시절 전기고문, 물고문, 날개 꺾기, 관절 뽑기, 볼펜심 꼽기

고춧가루 고문 등 끔찍한 기술로 학생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 등을 가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근안은 온갖 고문에 통달해 다른 기관으로 '고문 출장'도 다녔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수배대상이 되었고, 결국 1999년에 자수를 했다고 하네요.


[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

-1999년 10월28일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자수함.

-10년 10개월간 집과 은신처를 떠도는 도피생활을 끝내고 자수.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 간첩조작 사건

 1986년 반제동맹사건 등에서 피의자를 고문함.

-1985년 9월4일 이근안은 김근태 당시 민청학련 의장을 남영동 대공분실로 잡아들임.

-이근안은 이후 22일간 10여 차례에 걸쳐 김근태 의장에게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함.

-1988년 경기도경찰청 공안분실장이었던 이근안은 불법체포와 고문을 자행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에서 사퇴.

-같은 해 12월24일 김근태 당시 국민회의 의원을 고문하고 납북어부 김성학씨를 감금한 혐의로 지명수배됨.

-이근안의 잠적이 길어지자 안 잡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과 해외도피설, 자살설, 성형수술설이 제기됨.

-결국 1999년 10월28일 자수함.


-도피하는 동안 폐쇄회로(CC)TV와 진돗개 등으로 무장한 자택에서 수년간 숨어지내며 

 이사를 다닐 때만 집밖으로 나왔다고 함.

-1999년 11월 불법감금 및 독직가혹행위죄로 구속기소돼 2000년 9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았음.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은 이근안의 도피를 지시하고 1500만원의 도피자금을 지급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음.



이후 이근안은 2006년에 만기출소했다고 하는데요.

수감생활 중 신학교에 입학한 이근안은 출소 후 목사로 변신했으며, 

2008년 10월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한 분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근안은 목회활동 중에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그리고 2011년 12월 이근안이 고문했던 김근태 의원이 사망했지만 빈소를 찾지 않아 비판이 제기되었고,

결국 이근안은 목사직을 박탈당했습니다.



이근안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는데요. 2012년 2월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책에서는 지난날에 대한 반성도 있었지만 고문활동이 애국으로 한 일이라고 쓰여있었으며,

세월이 지나 정치형태가 바뀌니 역적이 되었다며 변명하기도 했지요.

이근안의 끔찍한 고문활동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요.

김근태를 고문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영화 남영동 1985가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근안의 행적을 찾았다고 하는데요.

김현정의 뉴스쇼 김정훈 기자에 따르면 이근안은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 살고 있으며,

행색은 내복차림의 늙고 배 나온 80대 노인의 모습이었다고 하는데요.

이근안 부인은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홀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고문사건에 대해서는 30년전 이야기이며, 자신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관련된 사람들은 다 죽었다며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며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근안 누구?1987 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와 1987 실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80년대 고문기술자로 악명높았던 이근안의 근황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은데요.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의 행동에 진심어린 반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끔찍하고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길 바라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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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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